Commentary

나로부터

"이 전시는 작가로부터 출발했지만, 결국 우리 각자의 내면을 비추는 또 다른 자화상으로 우리 앞에 놓인다."

정순용 작가는 점을 찍는 행위로 수많은 자화상을 구축해왔다. 그러나 그가 그린 자화상은 겉모습으로서의 자신과는 닮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자화상’이라 부른다. 그 이유는 그의 자화상이 단지 자기 자신만을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모든 이의 자화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있어 ‘점’은 단순한 조형 요소가 아니다. 점은 우주의 근원이자 존재의 최소 단위다. 그는 점 하나하나를 기쁨, 슬픔, 분노, 기억 등의 감정과 시간의 조각으로 여긴다. 그 조각들은 축적되어 얼굴을 구성하고, 그 얼굴은 곧 내면을 담은 자화상으로 완성된다. 그 점들이 모여 있는 작품은 일종의 정서적 지도이자 기억의 흔적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인간의 신체를 벌레들의 집합이라 상상하곤 했다. 이후 세포, 원자, 분자의 개념을 배우며, 이 상상이 실제로 과학적 기반을 지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작품 속 ‘점’은 단순한 물리적 단위인 원자에서 출발해, 생명과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조형 언어로 이어진다.

특히 그는 ‘눈’을 집중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눈이야말로 감정을 응축한 부위이자, 우주의 중심처럼 진실을 담는 창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삼되, 그것을 타자와 공유 가능한 시선으로 전환한다.

전시에 등장하는 ‘꽃’ 역시 상징적이다. 작가에게 꽃은 하나의 ‘우주’다. 꽃이 피는 순간은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며, 작가는 그 장면을 통해 자신만의 우주를 열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낸다.

작품 곳곳에는 추상적인 요소들이 자리한다. 이는 고향의 자연 풍경, 우주, 은하수 등 주변 사물에서 받은 영감을 조형화한 것이다. 이처럼 구상과 추상이 혼재된 화면 구성은 감상자에게 여러 층위의 해석 가능성을 제공한다.

정순용 작가가 처음 추상화에 매료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 광주의 ‘에포끄전’을 우연히 접하면서다.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 반짝임을 느꼈다고 그는 회고한다. 이후 미술대학 진학과 함께 추상표현에 몰입하게 되었고, 사진 동아리 활동 중 목격한 화가들의 ‘보이는 것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방식’에서 또 한 번 회화를 향한 결심을 굳히게 된다.

작가는 예술 이론도 끊임없이 탐색해왔다. 그는 특히 바자렐리의 ‘미술 알파벳’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다. 인간의 뇌는 각기 다르게 작동하며, 예술은 감상자의 해석에 따라 새롭게 완성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작품은 결국 관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고 믿는다.

이번 전시는 20여 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며 준비한 정순용 작가의 개인전이다. 소프트파스텔과 오일파스텔, 종이 꼴라쥬를 활용해 완성한 작품들은 점으로 구성된 얼굴들, 눈, 꽃, 그리고 추상적 배경을 통해 작가의 삶, 기억, 그리고 그가 바라본 우주의 조각들을 담아낸다.

정순용 파스텔화전은 하나의 점에서 출발해 감정과 기억, 세계를 품은 얼굴로 나아간다.